위수지역
이 조명, 온도, 습도 … 연천에 들어서자마자 잊고 지내던 감각이 피부로 와닿았다. 어딜 둘러봐도 가장 뒷배경엔 짙은 녹색의 산이 있고, 차창을 열면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타는 냄새, 번화가 곳곳에 있는 군장점들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군 시절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멀스멀 떠올랐다.
사실 나는 그다지 군대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추억도 없고, 오히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에 있는 동안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자연 경관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여기서 탈출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나 하거나 자연 경관보다는 가까운 번화가에 롯데리아가 있는지가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집으로 돌아와 서랍과 책장을 뒤져 군 시절 찍었던 사진들과 노트들을 꺼내본다.
다시, 연천으로 돌아와서, 군시설과 자연과 민간인 마을이 뒤엉켜 있는 모습들을 바라본다. 동네 입구에 세워진 탱크 금지 표지판, 기차역 앞에 있는 총알 자국이 남은 오래된 급수탑, 어느 집 앞 돌담 밑부분에 꿰차고 있는 병영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돌,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돌 들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고추들 … 서로에게 쓸모 없어진 것들과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살고 있는 모습들이 낯설면서도 낡은 기억 어디선가 봤었던 친숙한 모습들이다.
과거의 군대 시절 사진들과 연천에서 촬영한 새로운 사진들을 가지고 나만의 서사를 다시 재구성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