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과 사연의 스펙터클 by 전소영
발견한다 / 발견하지 안(못) 한다
구입한다 / 구입하지 안(못) 한다
보관한다 / 보관하지 안(못) 한다
발견하고, 구입하고, 보관한다.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의사결정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면 ‘보관’은 ‘수집’이 된다. ‘수집’ 단계까지 왔을 때 ‘발견’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구입’ 역시 마찬가지다. 발견과 구입을 완성하는 ‘소비’는 ‘조사’와 ‘연구’로 이어지거나 혹은 이를 가장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구입’ 과정이 생략되고 ‘발견’에서 ‘보관’으로 바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과감하게 ‘발견’ 과정조차도 생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 나의 조사-연구 실적을 잘 알고 있는 지인이 ‘수집’ 품목에 들어갈 것을 건네는 경우다. 그러나 이런 행운 혹은 불운과 관계없이 결국 ‘수집’을 완성하는 건 ‘보관’이라는 마침표다.
물론 애초에 발견하지 안(못) 하거나,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를 구입하지 안(못) 하거나, 구입했다 하더라도 이를 보관하지 안(못) 하면 문제는 단순해진다. ‘보관’이 ‘수집’이 될 일도 없으며, 그 전 단계인 ‘구입’ 역시 ‘조사’나 ‘연구’ 같은 거창한 감투를 얻을 수 없다. 이 과정이나 해당 물건에 얽힌 사연은 훨씬 짧아지고, 그 기억이 다시 구성될 기회도 줄어든다. 발견하지 안(못) 하고, 구입하지 안(못) 하고, 보관하지 안(못) 하면, 이렇게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반대로 이 모든 과정에 연달아 ‘네’라고 응답할 때,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극단적인 저장 강박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강박은 비교적 멀끔하고 반듯한 얼굴로 찾아와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주변을 뒤흔들어 놓는다. 반대로 삶이 뒤흔들린 탓에 이를 가지런히 정리할 강박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사연은 늘어나고 길어진다. 그리고 ‘발견-구입-보관’으로 이어지는 세 단계에 기꺼이 “네”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이 모든 대답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뜻밖의 스펙터클을 마주하게 된다.
양승욱은 장난감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셀 수 없이 잦은 ‘발견-구입-보관’을 반복한 끝에 이를 ‘조사-연구-소장’ 및 ‘작업’으로 연결해왔다. 애착의 면모는 실로 복잡하고 입체적인 법이다. 보관이 소장이 되어 작업으로 완성되기까지, 물리적인 물량 공세와 함께 여기에 얽힌 복잡한 사연들 또한 만만치 않은 역할을 한다. 여기서 ‘발견-구입-보관’ 각 단계에 육하원칙을 적용해 질문해 볼 수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발견했고 구입했으며 보관하는가? (어린이 양승욱부터 작가 양승욱까지, 아주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시시때때로, 온오프라인과 국내외를 가리지 않으며 보관과 기록 측면에선 실내외 그리고 개인공간과 공공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 많은 장난감을, 당시 상황에 맞추어, 귀엽거나 멋지거나 웃기거나 재밌거나 혹은 아마 본인조차도 정확한 대답을 정리하기 힘든 복잡한 다양한 이유로) 이런 간단한 질문만 정리해보아도 상당한 길이와 페이지의 엑셀 파일이 완성된다. 실제로 이 파일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사실’에 가까운 증거(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와 ‘기억’에 가까운 진술(어떻게, 왜)은 서로 얽히고 얽혀 해당 기억과 관련된 이후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혼란스러운 사연의 함수 수식을 산출해내며, ‘조사-연구-소장’으로 이어지는 ‘발견-구입-보관’의 가상의 엑셀 차트를 더욱 복잡하고 역동적이게 만든다.
이 글에서 가정하는 양승욱의 가상의 엑셀 파일은 그의 연출된 사진만큼이나 화려하고 선명하다. 그의 장난감 ‘조사-연구’와 ‘구입’ 사이의 행위는 재화와 화폐를 1:1로 교환하는 경제활동이기도 하지만 ‘해피밀 장난감’처럼 행복의 나라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통해 얻는 사은품 취득이기도 하며, 이베이를 통한 직구이기도 했다. 심지어 빠르게 지나가는 유행에 밀려 창고에서 자리를 축내고 있는 재고까지 그의 ‘조사-연구-소장’ 과정에 동원되었다. 2014년 1월 <문화+서울>에 실린 그의 인터뷰만 읽어 보아도 이런 사연의 타임라인의 길이와 밀도가 만만치 않다. 앞서 육하원칙으로 정리했듯이, 그의 사연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연의 키워드는 한국 사회에서 인형의 눈이 의미하는 바부터 국경(직구 과정에서의 판매업자로 의심받은 전적)과 법의 둘레(해지고 낡은 장난감 배송 탓에 마약 복용을 의심받은 전적)를 넘은 영역까지, 넓은 범위를 뒤덮는다. 그리고 사연은 사연을 낳는 법이다. 장난감에 대한 그의 사연은 물건(장난감)을 넘어서 장난감을 모아 기록한 시리즈 Fast Toys(2013~2015)의 사연으로 이어진다.
그는 무수히 반복했을 ‘발견-구입-보관’ 혹은 ‘조사-연구-소장’ 과정에서, 일정 시점에 불가피하게 마주했을 ‘뜻밖의 스펙터클’을 자신의 의도와 계산 아래 재배열하고 재구성한 새로운 이미지 ‘Fast Toys’로 제시한다. ‘Fast Toys’에서 장난감들은 야외 테이블, 책상, 선반과 책장을 비롯한 수납공간, 어항, 개수대, 방과 거실, 복도, 주차장, 계단, 난간, 운동장에 집합하여 일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모였던 장난감들을 다시 각자 흩어진 피사체가 되어 정방형 이미지로 이어지는 ‘Keep Calm and Play with Toys’(2013~)로 기록한다. 사용자 및 구매자가 이미 빠르게 잊어버렸을 기억(Fast Memories)은 장난감의 (혹은 장난감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직설적인 시선을 통해 이전의 기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마주치는 순간 도무지 진정할 수 없는 이미지를 제시하며 일단 진정하라고(Keep Calm) 꾸준히 이야기해온 양승욱은 이전에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진 ‘Fast Toys’이자, 본인이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Fast Memories’로 취급해온 이전의 작업을 ‘Past Toys’(2020)로 호출하며 이전의 스펙터클을 다시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피사체가 위치한 자리는 마치 이들의 원래 자리였던 곳과 전혀 그렇지 않은 곳에 대한 규정과 인식 및 경계를 뒤엎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Fast에서 Past로 달리 호출되는 만 7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 작가와 작업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가까워지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빨리(Fast) 소비되고 사라질 것만 같았던 (혹은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장난감들은 몇 번의 집합으로 영원히 기록될 단체 사진을 남기고 과거(Past)의 증거로 소환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과거의 것으로 호명되고 수식되는 장난감들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앞선 미래에는 어떤 이름으로 호명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때는 같은 이미지 안에서 또 다른 수집의 증거와 사연이 모여 이전에 없던 스펙터클을 이루고 있을지 모른다. 그 전에 2020년 현재, 양승욱의 수집과 사연의 스펙터클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양승욱의 사진 속에서 빈틈없이 공간을 장악해버린 장난감들은 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들의 집합으로 완성된 이미지는 이들의 표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