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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날 당시 우리집은 상당히 가부장적이었다. 비록 경제활동은 부모님이 하고 있었지만, 가족 문제의 최종 결정권은 조부모님에게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하셨고, 치매에 걸려 나날이 사리판단이 흐려지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본격적으로 돌보기 시작하셨다. 서로 다른 이유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각각 요양원과 집에서 그들의 자식들과 손자들의 걱정거리가 되어 갔다.

치매가 아무리 심해져도 자녀와 배우자는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근거 없는 바람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점차못 알아봤고, 할아버지는 당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내인지 어머니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내심 기대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같은 날 돌아가시면서 드라마틱하게 생애를 마감하고, 우린 두고두고 그에 대해 얘기할 수 있기를바랬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던 날, 나는 95세 된 할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았다. 그로부터 4년 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날 요양원에서 요양사가 떠주는 죽이 기도로 잘못 넘어가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1여년 후 운명을 달리하셨다. 방전된 배터리처럼 모든 에너지가 서서히 빠져나가듯이 100세를 넘긴 치매 걸린 할아버지는 우리가 함께 살던 집에서 누워돌아가셨다.

나는 이 일을 반드시 기억하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기억의 방법과 방향이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고된 시간을 감동적으로 기록해두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어쩌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일단 카메라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작업을 하기위해서, 전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끔은 힘든 상황에 거리를 두는 핑계로, 너무 소극적이지는 않게 가족 관계에 참여하는수단으로, 혹은 어떤 순간은 정말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왜 카메라를 계속 들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에 내가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지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더 마음을 먹었다면 카메라를 누군가의 얼굴에 더 가까이 들이대면서 시선은 더 멀리 둘 수도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그 대답을 대신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