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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내내 질병의 은유는 훨씬 악랄해지고, 불합리해지고, 선동적이 되어갔다. 게다가, 질병의 은유는 질병을 비난하는 상황을 환기시키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다. 건강의 일부이거나 자연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을 법한 질병은 ‘부자연스러운’ 모든 것의 동의어가 됐다. ” 수잔 손탁,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2002)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19세기 창궐한 결핵과 그 다음 세대에 등장한 암을 소재로 질병에 기생한 은유들을 주적한다. 인류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질병의 불확실성에서 인간은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정복할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 앞에 인간은 공포심을 느끼고 질병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숙주와 접촉해 감염되고 질환을 일으킨다.’ 이 단순한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정복하지 못해 인간은 절대신을 찾고 질병을 신의 심판으로 간주했으며, 감염자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자로 매도되었다. 질병 위에 켜켜이 쌓인 은유적인 이미지들을 인간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80년대 에이즈가 발견된 초기에 미국에서는 ‘동성애자 암’, ‘동성애자 역병’으로 불렸다. 성교가 주된 감염경로로 알려지면서 감염자들은 공격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문란한 도덕적 규범이 약점이 되었다. 에이즈의 경우 대부분 혈액에 의한 감염에 의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이즈는 불특정 소수의 (다수일지도 모르지만) 종교인들에게는 동성애자를 향한 신의 벌처럼 여겨진다. 치료법이 발달하여 당뇨병과 같은 조절이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현재에도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지옥은 당신의 극락보다 아름답다 (2020)

옛날부터 종교에서는 사후세계 중 지옥이라는 공포 공간을 만들어 살아 생전 죄를 지으면 안된다며 사람들의 행 동에 제약을 가했다. 불교설화의 10대 지옥중에 흑암지옥이라는 곳이 있다. 이 지옥은 “인간세상에서 남녀 구별을 못하고 자식하나 보지 못한 죄인을 벌주는데, 죄인은 낮도 없고 밤도 없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흑암지옥에 갇힌다”고 전해진다.

코로나 이후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블랙 수면방”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면 “어두운 조명 아래 수건 하나만 걸치고1평 남짓한 곳에서 그짓을 한다. 넓은 방도 있다지만 넓은 곳은 여러명이 들어간다”는 인터뷰 내용이 있다. 오늘날 게이들은 사회의 제약을 피해 암흑속의 게이 수면방을 일부러 돈을 내고 찾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 어진다.

어두캄캄한 “흑암지옥”도 “수면방”도 여전히 비퀴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이 흑암지옥은 어쩌면 비퀴어들이걸러진 완벽한 퀴어공간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럼 사후세계의 퀴어 공간으로 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동성애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