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in Soje (2016)


소제동에는 전해 들었던 호수의 전설과 철도 관사의 흔적 대신 기괴하고도 스산한 기운들이 가득했다. 미로같이 꼬여있어 한 길만 잘못 들어도 막다른 곳이 나와버리는 골목들,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 좀처럼 구별하기 힘든 집들, 어디선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강아지들의 짖음소리. 이미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길거리에 방치되어 나뒹굴고 있는 가정집기들.모든 것들이 쓰다 남은 조각보처럼 얼기설기 놓여져 있다. 뼈대만 남은 채 파헤쳐진 삶의 흔적은 고물상 주인이 다녀간 듯한 쌓여있는 포대 안에서 가지런하다.

밤마다 조용히 동네 골목길을 산책하다 보면 이런 분위기가 보다 극적으로 사진으로 들어온다. 낮에는 빈 집인 줄 알았던 집의 마당에 불빛이 새어나오고, 옥상에 올라가보면 펄럭이는 점집 깃발과 종파를 알 수 없는 교회의 십자가 불빛이 반짝인다.

어느순간 나에게 이런 분위기가 낯설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파트들이 들어서버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던 서울 봉천동의 철거 직전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들,낯선 인부들에 의해 허물어진 광경이 주는 무서움과, 이와 함께 사라질 옛 추억에 대한 안타까움,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이 이 곳 소제동 밤길을 걸으며 되살아나게 되었다.

대전 사람들조차 거의 와본 적 없다는 소제동에 머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 낯선 외부인의 시선이 담긴 작업을 통해 소제동의 골목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